목회자의 방/영감있는 글 61

<하나님에게는 비밀이 있다>, 39-40.

“분노를 잘 다뤄야 한다. 분노만큼 신속히 지각을 흐리게 하고 판단을 어둡게 하는 감정도 없다. 분노를 표하지 않으면 스스로 상처 입을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지난 20세기 발산주의적 이론에 의하면, 분노를 표현하지 않을 경우 속으로 쌓여 심각한 정서적, 신체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긍정적 감정이 쌓이지 않듯 분노도 쌓이지 않는 법이다. 분노를 자주 표현하면 오히려 분노가 늘어난다. 만족은 분노의 표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야기한 문제의 해결에서 온다.” “편집증적 망상을 조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 각정하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지만, 그런 상념은 대단히 비현실적인 경우가 많다. 남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한 우..

존 브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 295.

“새 하늘과 새 땅이 여기에 있다(21:1-4; 참조, 사 65:17-19); 하나님의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사람들 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그 안에는 없어지지 않는 기쁨이 있다. 모든 슬픔과 모든 고통과 모든 악은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어휘로써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기쁨이다. 어떤 보석도 그것을 밝힐 만큼 밝지 못하며 태양도 그 영광 옆에서는 빛이 바랜다! 기쁨은 언어가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을 때까지 점점 강한 언어로 쌓여 간다.” “그것은 역사의 마지막에 승리에 찬,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다. 그리고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도성과 왕국을 향해 교회는 갈망의 눈을 돌리고 그리고 교회의 기도는 위를 향해 올라간다(계 22:20). ‘아멘 주 예수여 오시..

존 브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 288-89.

신약성서 안에는 가시적인 교회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없다. 그렇게 동일시하는 교회는 곧 하나님을 교회 자신의 인간적인 정책과 관습을 보증하도록 초청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백성을 자신의 특별한 신조를 고백하고 그 예배에 참여하는 모범적인 사람들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회는 그 나라의 도래를 그 교회의 수적인 성장의 면에서 계산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약의 교회가 될 수 없다! 그러한 동일시는 아모스 이래 예언자들이 우리에게 말해 온 것처럼 큰 함정이다. 그것은 외적인 복종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었다는 어리석은 자만심을 키워줄 뿐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 참으로 이것은 그의 교회이기 때문에! - 어리석은 기대감을 키워 줄 뿐이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그..

존 브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 189-90.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줄곧 기독교 신앙의 주류에 속해 있다. (중략)  그 십자가를 향해서 우리는 구원을 찾는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전혀 원치 않는다.  참으로 우리는 십자가들을 멀리 유지하는 것을 종교의 주요 기능으로 만들려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은 받으려 하지 않는 고난을 당할 그리스도를 원한다.  그 그리스도는 우리의 안락이 방해받지 않도록 자신을 낮추는 그리스도이다.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생명을 잃어야 한다는,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부름은 신비한 것으로 그리고 우리의 신경을 거슬리는 것으로 남아 있는다.